에어컨 고장 발생, 원인은 비둘기, 그래서 원인 제거

작년부터 거실의 스텐드형 실내기는 바람이 그리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고, 안방의 벽걸이형 실내기는 물을 흩뿌리는 것 같이 응축수가 과하게 나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본가에 있던 에어컨들이 고장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오래된 차량에서 주로 발생하는 에어컨 고장도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으니 에어컨 고장이라는 생각은 1도 안해봤지요. 그냥 무던히 덥고 습한날이 계속되다보니 냉방이 기대치보다 낮게 나오는것 같았고, 마찬가지로 응축수도 습도가 너무 높아서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했었습니다. 사실 그냥 이해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집에서는 에어컨을 그렇게 길게 사용하지 않으니 그려러니 하고 넘어간 것도 있지요. 당장 냉방이 안되던 건 아니였으니까요.


그리고 올 해가 되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집에 손님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작년 9월 말쯤부터 봉인해뒀던 에어컨을 다시 가동했는데,,, 아 이건 문제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거실의 스탠드형 실내기에서는 찬바람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안방의 벽걸이형 에어컨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응축수가 흩뿌려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A/S를 불렀습니다. 증상을 설명하니 미세한 가스 누설이 있을 것이라는 기사님의 말에 잘 수리해달라고 요청했었고, 와서 보셨던 기사님은 원인을 단박에 캐치하셨지요.

원인은 바로 이것. 비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집은 어느 광역시의 변두리 주거단지에 그린밸트구역과 맞닿아 있고, 앞으로는 조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적당한 높이의 동산이 있는데다, 적당히 높은 지대 위에 지어진 아파트의 꼭대기층이여서, 비둘기들이 평소에도 실외기나 울타리, 그리고 지붕 슬라브에 잘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비둘기들 입장에서는 이런 공간이 쉬고 있거나 살고 있기 좋은 공간이긴 할 겁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집에 오게 된 이후로 비둘기는 매번 봤었고, 비둘기가 싸우고 노는 모습도 보고 했지요. 처음에는, 아 이게 자연이지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있었습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비둘기 알을 본 적은 없는데, 올해는 아주 제대로 된 둥지를 지어놓고 알도 품고 있었네요.

저는 그저 비둘기가 주워온 것들이라던가 배설물로 주변이 더러워 지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비둘기 배설물이 산성을 띄다보니 에어컨 실외기와 연결된 배관과 케이블, 응축기의 핀과 가느다란 배관을 손상 시킬 수 있다는걸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되었네요. 아마 비둘기들이 놀면서 배관을 감싸놓은 마감제를 뜯기도 하고, 배설물이 응축기와 만나 부식, 손상되면서 미세 가스 누출이 있었고, 그게 작년부터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분가하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집은 어느 지방시에 그나마 적당히 사람들 모여 사는 어느 읍의 변두리쪽에 있는 단독주택이여서 비둘기는 없었기 때문에 비둘기의 피해가 있을거라는건 예상 조차 못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그것 참 새로운 경험이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서비스 기사님께서는 우선 비둘기 배설물 처리와 비둘기 접근을 못하도록 마는 조치를 먼저 한 뒤에 수리 작업을 진행하는것이 가장 알맞다고 얘기는 해주셨지만, 그런 업체와 직접 연결을 해주지는 않는다고 하였고, 찾아보면 그런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있거나 아파트 자체적으로 연결된 업체들이 있을테니 연락해보라 안내해주셨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의 관리소에서는 딱히 지정된 업체는 없는 듯 해서 인터넷에 저희 지역에 작업을 한다는 업체를 찾았습니다. 비둘기 배설물 등 청소 작업 진행하고, 비둘기가 앞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 작업까지 하는 업체이지요. 이례적인 폭염이 있었었기에 빨리 에어컨 수리를 하고 싶어 연락했더니 그래도 나름 빠르다고 생각되는 날짜로 예약을 잡아줬고, 그날이 왔습니다.

업체분들의 작업 과정은 이러했습니다. 우선 최대한 오염물을 제거한 다음에 스팀으로 때를 불려 내고 석션으로 당겨내며 마무리로 남은 쓰래기들을 쓸어 담는 식으로 닦아내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비둘기가 더이상 실외기쪽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사실 작업 난이도로만 따지자면 청소와 샤시와 망 작업 정도의 작업이기에, 주변에 인테리어 공사를 한 분들이 있다면 비교적 저렴하게 작업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청소를 하다가 본의 아니게 쓰래기를 투척하는 꼴이 될 수 도 있고, 그냥 딱 봐도 위험한 작업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술자를 부르게 되는 것이죠. 본가에서 살때 이런건 아버지가 뚝딱 하셨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컸기에 사실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하는 기술자를 부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 사람이 기술을 배워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ㅎㅎ

이 이미지는 대체 속성이 비어있습니다. 그 파일 이름은 image-456-1024x768.png입니다

준공된지 20~30년 쯤 된 아파트이다보니, 아무래도 페인트가 벗겨지고, 외부 오염이 많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새 건물의 실외기 자리처럼 청소가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이 집을 제가 사서 들어왔을때의 모습 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실외기만 처리하는것이 아니라 샤시 틀, 그리고 에어컨 배관이 지나가는 베란다의 약간 낮은 단차 안쪽도 아주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셨습니다.

다만 실외기 공간이 아무래도 옛날 건물이다보니 조금 부족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꼭대기층이다보니 위험부담이 있어서 실외기 안쪽으로 쌓인 이물질은 청소가 잘 안된 것 같네요.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에어컨 수리 기사님께서 수리하러 오셔서 실외기 분해 후 추가적으로 청소를 해주셔서 최종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청소가 완료된 후 이제 비둘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원래 이 망 작업은 실외기 공간에서 윗층 실외기 공간까지 틀을 짜서 올리는 식으로 진행하는데, 저희집은 꼭대기 층이기 때문에 윗층 실외기 자리, 슬라브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화상 상담시에는 이 틀을 실외기 공간에서 살짝 올라오고, 지붕처럼 대각선으로 베란다 울타리까지 오는 식으로 하자고 얘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이때 제가 에어컨 수리를 받아야 하는데, 비둘기 배설물등을 먼저 정리하고 퇴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까먹으신 모양입니다. 오셔서 실외기 상태를 보시고 수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얘기가 다르다고 했다고 하네요.

제가 회사에 있어서 의사소통에 약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집과 동일하게 직각으로 그대로 틀을 올리는 식으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위처럼 하게 된다면, 에어컨 수리가 필요할 때 다시 철거를 하고, 수리 후에 다시 재설치를 해야 해서 비용도 추가적으로 들기 때문입니다.

작업이 완료된 모습입니다. 에어컨 실외기 슬라브 위의 울타리에 딱 맞게 망이 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윗층이 없는 문제는 아크릴을 얹혀 둬서 햇빛도 잘 들어오고 견고하게 고정해두셨습니다.

외벽에 딱 안 붙혀두신건 집사람이 물어보질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 아파트 외벽에 붙혀두는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겠거니, 어련히 잘 알아서 해주신거겠지 하면서 넘어갑니다. 베란다 울타리 틈도 꽤 넓기 때문에 이부분이 사실 꼼꼼하게 되어 있냐가 제일 우려했던 사항인데, 일단 눈에 보이는 부분은 아주 잘 되어 있었습니다. 뭐 이렇게 만들어둬서 실외기 위 공간을 제한적으로나마 추가 활용이 가능해 진것도 어찌보면 장점입니다. 물론 위험할 수 있으니 그냥 놔두는것이 더 좋겠지만요.

다만, 이제 베란다 샤시와의 틈은 어떻게 해결하기는 어렵나 봅니다. 설치 후 주의사항으로, 방충망을 완전히 닫지 말고, 시공한 틀에 걸치도록 안내해주었다고 하는데, 제가 실제로 보니 방충망을 완전히 닫을 경우 그 틈이 비교적 넓습니다. 뚱뚱하고 복스러운 비둘기들이라면 못 들어올 것 같지만, 만약 홀쪽한 아이들이라면 어찌보면 들어올 수 있을 것도 같네요.

비둘기들은 어리둥절합니다. 갑자기 본인들의 터전에 발을 붙일 수가 없으니까요. 일단 근처라도 붙어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울타리에 앉을만한 편한 공간은 없고 하니 금방금방 다시 날아가거나 아예 지붕 위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또는 아랫집의 실외기에서 호시탐탐 들어갈 기회를 노리거나, 공간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문제는 위에서 적은대로 샤시 틈이나, 어쩔 수 없이 울타리 사이 공간이 남는 부분을 찾아서 고개를 들이댑니다. 다행히 잘 먹은 비둘기들이여서 들어오지는 못하는데, 아래쪽 작은 틈은 제가 추가적으로 보수를 해야 할 것 같고, 방충망은 왠만해서는 에매하게 걸친 저 모습 대로 놔두어야 할 것 같네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녀석들도 막혔다는걸 알고 있어서 시공이 완료된 첫날과 둘째날은 비둘기가 계속 근처에 어슬렁거렸지만, 시공한지 일주일이 되는 현재 시점에서는 비둘기가 더이상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지나가다가 잠시 저렇게 앉아 있는 모습은 간혹 보이는데, 그마저도 금방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얼마전까지 에어컨 실외기 위에, 그리고 실외기와 샤시 틈사이에서 놀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눈에 띄지는 않네요. 처음에는 위에 아크릴 붙혀둔 공간으로 비둘기가 또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아크릴 위는 미끄러워 하는건지, 아니면 투명해서 앉으려고 하지 않는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위에 앉은 모습도 보진 못했습니다.


저렇게 작업을 완료한 뒤에 에어컨 수리기사님을 다시 불러 최종적으로 에어컨을 말끔히 수리가 되었고,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총 들어간 비용은 어림잡아 큰 돈 1장 정도 되네요. 에어컨 수리 중 추가적인 청소를 하긴 했지만, 뭐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외기를 들 수 없어서 분해하지 않으면 청소가 안됬었을테니까요.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 이틀전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고, 유달리 비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딱히 흔들림이 느껴지거나, 불안해보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 아마 이 집을 떠날때 까지 이부분을 신경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조금 문제가 된다 싶으면 실리콘 작업을 추가로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여튼 만족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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